한국사

신민회와 신간회

wblog 2013. 6. 16.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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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회

1907년 결성되었다.

오산학교, 대성학교 설립, 만주에 신흥무관학교 설립해 독립군을 양성했다.

대한매일신보 발행. 잡지 '소년' 발행, 계몽강연운동을 하였다.

안창호, 양기탁, 신채호, 장지연. 등이 중심 인물이다.

1911년 105인 사건(데라우치총독 암살음모사건)으로 해체되었다.

신민회>경학사>부민단>한족회(신흥무관학교설립)>서로 군정서

 

신간회

1927년 결성되었다.

광주학생운동에 진상조사단 파견. 민중대회를 계획했다.

민족주의 좌파와 사회주의 우파가 합작해 결성되었다.

신채호, 한용운, 안재홍, 이상재, 신석우. 등이 중심 인물이다.

민중대회 계획 실패 후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에서 대의원 결의로 4년만에 해산햇다.

 

 

신채호

'역사라는 것은 아와 비아의 투쟁이다.'라는 명제로(변증법) 민족사관을 수립했다.

신민회, 신간회, 국채보상운동에 참가. 대한독립청년단 창단했다.

황성신문에 논설 게재. 대한매일신보에 주필로 활동했다.

조선상고사, 조선사연구초, 등을 집필했다.

상고사의 무대를 한반도와 만주 중심의 종래 학설에서 벗어나 중국 동북지역과 요서지방까지 확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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