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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의병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분노한 유생들의 친일내각을 상대로 한 항일의병이다.
전국 의병 봉기를 틈탄 아관파천으로 친러내각이 정권장악했다.
단발령 철폐와 공세 탕감으로 의병들은 해산했다.
정미의병
1907년 헤이그 특사 사건을 빌미로 한 고종황제 강제 퇴위와 군대해산이 계기가 되었다.
유생 중심의 이전 의병과는 다르게 농민, 천민도 동참했다.
1909년 일제의 남한대토벌작전으로 해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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